풍월은 해를 읊는다.

자연이 나를 기다린다.


울타리 너머의 세상은  자유로워 보인다.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자유로워 보인다.


습한 숲의 진흙을 딛고 솟아난 굵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는 시간이 피고 진다.

몽골몽골한 싹에서 신록은 자라고 저마다의 꽃과 열매를 올려 피우고 내리 떨군다.

가만히 살다가 뼛속 깊이 저며오는 추위가 오면은 포곤히 덮이는 그것은 되려 차갑기도 축축하기도  것이   없는 무언가로 상념에 젖게  뿐이다.


어머니.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떨구지도 않았는데새로울  없던 두어번의 계절 끝에 편치 않은 몸으로 굳은 바닥에 누워 그들에게 딱딱한 몸이 들려 자연스레 울타리 밖으로 나가신 어머니.

어디에도 응시를 두지 않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눈맞춤으로 짐작컨데 분명 자연에 속하게 되셨을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입버릇처럼 주인 이야기를 하곤 했다.

 미소띈 얼굴로 자신을 보아준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자연 꼬리가 살랑이면은 머리와 목을 쓰다듬어주고

가끔은 깨갱 소리가  정도로 험하게 대했지만 분명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되었기 때문에 그러할 거라 납죽 엎드려 꼬리를바짝 말고 눈치를 보며 기다리면 행복한 때가 오더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바보같은 소리.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홀로 사는 인간이 우리를 돌봐주는 지금의 시절이 좋은 점이라면은 제때 밥을 준다는 족보를   없는 형제들이 많다는 이따금 인간이라는 희망이 다가온다는 점이다.


조숙한 나의 판단이다.

눈으로만 밟을  있는 초록은 다섯 번의 사계절이 돌아오고서야 점점 다가설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왕왕 짖는 것만이 우리가 자신을 분출하는 일인데역병과 자연재해의 축복을 받지않는 다섯 번의 굴레가 지나서야 신체가 야위고 시선은 이미 그곳에  닿은듯 황홀경에 빠지는 노인이 되더라.


인간.

  없는 족속.

언제부터인가 많은 그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자연의 축복에는 슬픔의 눈물을 짓고 저주받은 육신의 욕망을 미끼삼아 나를 비굴하게도 연명케 한다.

그들이 건넨 져키를 우적우적 씹으며 독백을 잇는다.

견생의 마지막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들이 걸어줘야 하기에 살려는 두겠다만그들의 아리송한 마음을 모르겠고 그러한 의구심은 두려움마저 들게 한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일곱 번의 사계가 지났다.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


돌아볼 날들이 많아진 만큼의 혜안은 하얗게 찾아왔다.

타는 듯한 갈증은 차가운 포근함이 녹아내린 후에도 내리치는 빗발에도 채울 수가 없도록 설계되어가고 있다.

먹고 자기 급급한 삶의 운영도 낡고 헤져서   사이로 볕은 커녕 쥐새끼들이 우글우글 기회를 노릴 뿐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무너져 가는 것과 자연을 동경하는 부질 없는 몸을 유지할 여력이 없어져감은 순리대로인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들의 우리를 향한 시선과의 응시에  닿으면 밀물처럼 밀려드는 슬픔은 오롯이 우리들의것인 것만 같아서매일같은 내일 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은 확실히 그들에게 길들여진 까닭일 것이다.


욕망.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얼까.

가깝게는 자신과 주위를 돌보며 신체에 깃든 소우주의 순행을 알아가는 .

멀게는 주어진 운행에 순응하며 자연의 부름을 기다리는 .

산다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도멀어지게도 하는 욕구의 연속이다.


나의 조상들로부터 시작된 부모와 형제자식들의 대는 번잡하게 세를 불려간다.

한정적인 물과 식량.

  없는 자리.

홀로 하늘을 우러를  없는 소란.

살아있다는 감각은 사라진지 오래.

 형제들은 밤하늘에 아리우는 별들을 동경하지 않은지 오래이다.

그저 티끌만한 자원을 욕망할 뿐이다.


수의사.

혈혈단신 소굴에 들어와 정신을 차리고 살아나간다.

다시 오고  오기를 반복하며,

나의 형제들은 자연스러우리만치 죽은 듯이 나갔다가 단잠에 빠져 우리 안으로 다시 들어올 뿐이다.

헤아리기에는 길고 길었던 계절의 순환 속에서

나와 나의 형제 그리고 자식들은 그저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우리들만의 오손도손함과 희로애락 속에서

하루하루 자연의 부름을 기다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심드렁히 기다린다.


봉사자.

살랑살랑 꼬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스레 마주치는 사람의 눈동자에는 어째서인지 밤하늘 너머가 보인다.

자연은 무얼까.


풍월의 나이에 들어서  바랄 것이 무엇이냐만은.

자연의 도리도 뻗치지 않는 이곳에 버려졌던 우리의 선조들.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언제나 가망으로 기울었던 실낱같은 바람.

악과 악취를 분간   없었던 어둠을 밝혀주는 달과 같은 사람들.


그들은 각기 다른 계절처럼 들어서 일상처럼 있어주었다.

돌아가기에 자연으로 가나축복해주었다.

다시 돌아오기에 자연이구나 했다.


맺음.

모든 욕구가 사라져 간다.

나를 소우주에 가두어 두었던 욕망.

 속에서 섭리를 배웠다.


마땅히 반려라면 사람과 함께이며 배웠을 그것을

봉사자의 바람과 밝음 속에서 시나브로 알아왔다.


심장 박동이 뛰는 것이 느껴지고 숨이 가빠오는 것은 마지막 욕구일 것이다.


이번에도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기울지만 자연을 동경하기에 어디인지   없는 그곳을 응시한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많은 세월 지구의 퇴적으로 쌓여온  없는 이야기들을 두근거림으로 받아들일  없다는 사실.


우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기에 정상화 되어야 한다.


 방법은 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


생각해보면 살아있다는 감각은  좋았는데 말이지


육신이 사라지면 나는  명의 마음 속에서 살다가 영영 가버리고 마는 것일까.


실낱같은 희망을 소원해본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나같은 인생은 다시 없기를 바라고  빌어 본다.


풍월은 해를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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